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사적 취향에 대한 뻘글모음입니다.

인생 자체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합시다

여행일지

델리. 사람. 만남. 헤어짐.

타선생 2023. 1. 26. 20:49


델리에서의 마지막 날은 모든 쇼핑을 마치고, 주문한 파우치를 픽업해야 했고,

택배서비스 샵에 모아둔 짐들을 최종 팩킹해서 주소를 적고 트랙킹 넘버까지 받아야 델리에서의 일이 겨우 끝나는 샘이었다.
오전부터 발발 거리면서 물건을 사 모으고, 와중에 이제 인도를 떠나는 KY를 배웅하기 위해 나빈가게를 두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점심도 먹어야 했고, 믹스베지 파라타를 허겁지겁 먹고 KY를 만나러 갔다.



이상하게도 KY이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친근했다.

어디선가 만났던 것 처럼, 첫 만남부터 호감이 있었다.
첫 인상은 씩씩하고 싹싹해 보였지만, 보면 볼 수록 예민하고 연약한 모습이 비춰졌다. 아직 어린 친구였다.
나보다 내 아들과 훨씬 가까운 나이인 20대 초반의 풋풋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시기만이 지닐수 있는 순수함을 간직한 청년이었다.
수요일에 인도에 도착해서, 목요일에 만난 KY. 그리고 그날 저녁 D와 다 함께 코넛 플레이스에서 KY의 마지막 인도에서의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제안했다.
이모뻘인 누님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 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두 동생들과 함께 코넛 플레이스의 팬시한 레스토랑에 앉아있자니 금새 인도를 잊을수-…는 없었지 -,  카레를 먹었다.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워, 메인바자르에 돌아와서 크리슈나 카페 루프톱에서 11시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시간이 델리 최고의 순간이었다.
D도 나와 같은 예민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KY는 별 말 없이 우리들의 대화를 주로 듣기만 했었기에,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었다.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다 크리슈나 카페에서도 계속되는 D와 나의 대화 옆에서 KY는 시종일관 깊이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을 보였고
드디어 D가 먼저 물었다. 무슨 생각중이냐고.
그러자, KY는, 그가 겪어온 고통과 고민에 관해 털어놓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역시 매우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D와 나는 거의 비슷한 정도로 놀랐던 것 같다. 이런 우연이?!
우연히도, 아니 우연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우리 셋은 서로 비슷한 과거와 감정을 공유하고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깊고 몰입된 대화였다.
흔히 나눌수 없는 속내를 드러낼수 있는 자리였고, 다른 둘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우 고양되었었다.
왜 때문인지 동시에 매우 슬퍼졌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날아가듯 달리고 있었다. 똑같은 코스를 열번, 매우 빠르게 돌아 스스로의 기록을 갱신하는 그런 꿈이었다.
다음날, KY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는 말해주었다. 어제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그렇게 KY를 배웅하고, 나는 다시 해야할 일들에 집중해야만 했다.


인도에 도착한 후로, 아침에 일어나, 잠드는 순간까지 하루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생활 했을때의 두배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래서 인지, 델리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 마치 일주일 정도의 시간속에서 벌어진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고작 이틀이었지만.

그리고.
KY가 떠나고 나서 D와의 대화에서 조금 어색한 기운을 느꼈다.
예민한 사람들인 우리는, 이미 서로가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지.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여느 사람들의 숙명처럼 우리는 짧게 만나 금새 헤어지는 처지인 것을, 그의 얼굴빛에서 왠지모르게 느낀 것 같다.
각자의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을뿐.
그럴때는, 괜한 아쉬움, 미련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아쉬운 눈빛을 주고 받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다른’ 이야기가 서로의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을까.

떠나는 KY의 손에 작은 종이 봉투를 쥐어 보냈었다.
- 누나가 인도오면 꼭 사먹는거야.
D와 함깨 셋이 그 작은 종이봉투로 한참을 재미난 상상을 하며 농담을 주고 받고 그랬던 시간들. 벌써 그리운것은 왜일까.
둘은 불완전하다.  언제나 셋이 완벽하다. 넷은- 고착되기 시작한다.

자이뿌르에 와서 이곳에서의 생각을 적으려고 시작한 글인데, 왜인지 델리에서의 추억이 길게 나를 붙들고 있었구나.
어젯밤 꿈속은 희미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본디 그런게 꿈이긴 하지만,
요 며칠 사이의 꿈들이 워낙 생생했었기에 흐릿한 화면속의 그 하얀 얼굴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멋진, 비지니스 우먼이 되어 씩씩하게 인도에 혼자 와서 사입을 하고,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 심지어 이곳에 와서도 창작을 쉬지 않는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취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조금 버거운 걸까.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할 것들을 하는 것일 뿐인데 단지 생각이 너무 많은걸까.
모든것이 그렇고, 그렇지 않다.

왜인지 급격히 감성적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 이입되서는, 홀로 저녁 탈리를 입에 욱여넣으며 무심코 본 타인의sns 글에서 나는 너무 깊은 상실의 아픔에 눈물이 펑펑 쏟아져 버렸다.
상실. 그것이 근간의 나를 가장 뒤흔드는 감각중 하나 인듯 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얼마간은 감정적인 상태였지만 애써 현실에 집중하려고 한 나머지, 지나치게 무감각해 져 갔던것도 같다.
스스로를 감정의 태풍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었을까.
상실감은 지난 몇년간 계속에서 나를 매우 흔들고 있다.

아무하여, 그렇게 델리를 뒤로 하고, 씩씩하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왜 난 지금 ’씩씩하게‘ 라는 표현을 쓴건지 잠깐 생각해본다. )
자이뿌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