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사적 취향에 대한 뻘글모음입니다.

인생 자체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합시다

여행일지

인도로 떠나기 전날밤

타선생 2023. 1. 23. 02:02

2023.01.09 일기.

드디어 첫 발을 떼었다.
홀로 떠나는 인도 여행. 그리고 태국.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하지?
아니, 어떻게 이제서야 혼자 여행이 가능한거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 게다가 가녀장으로서 아이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다는 것은
결혼해서 17년 만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일주일에서 열흘간 짧게나마 국내 여행이나, 가까운 일본에, 그리고 인도도 한 번 . 딱 일주일간의 출장 여행이었지만, 그런 기회는 있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긴 시간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애매한 기간. 시간. 여운. 아쉬움 등.
코로나로 모두의 발이 묶이게 된 이후로, 나 역시 인도나 해외에 가지 못하게 된 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심했다.
여행으로 매년 벌어들인 돈을 탕진, 아니 물건과 재료를 매입하는 데 모두 쓰긴 했지만,
한 두달 동안 세 식구가 해외에서 지내는 시간과 일년동안 근근히 벌어서 모은 그 돈들은 정확히 일 대 일로 사라져 갔다.
한때는 탕진잼이였고 욜로 였지만, 나이가 점점 사십에 가까워져 가면서 불안감히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차에
코로나는 돈을 아낄수 있는 챤스와도 같았다. 그래. 돈을 모으자.
그렇게 3년에 가까운 시간을 제주도 작은 섬 안에서 지내다가! 드디어 나갈 시간이 온것이다.

열심히 모았다. 인생 처음으로 3000만원의 저금을 만들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지금은 여행경비와 사입비용 모두 합해 450만원을 들고 떠난다.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최선은 저 사백오십만원.
달러가 많이 싸져서 그나마 800달러를 바꾸는데에 백 만원이 조금 안들었다.
처음으로 외환환전소에서 수령하는 온라인환전을 해 보았다.
내가 작은 제주섬에서 매일매일을 같은 생활속에서 보내며 근근히 삶을 이어 가는 와중에도 세상은 착실히도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구나.
이 작은 스마트폰이 모든것을 해결한다.
오늘 공항에서 인도 에어수비다에 코로나 음성 확인 영문 결과지를 업로드 하는 데만 해도,
당장 사진을 찍어 업로드 하면 되겠지 하고 덤볐다가 pdf 파일로 변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앱으로 뭔가 있겠지 하고 찾아보니 역시!
문득 생각했을 때 이게 필요하구나, 저게 되면 좋겠다- 싶은건 대부분 나와있는것 같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들 덕분에 오늘 내가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비행기에 탑승하기전 30분 동안의 핸드폰 과의 사투는 무사히 업로드 완료와 에어수비다의 메일확인으로 무사종료.
수성이 역행중이라 그런가… 잘 만 되던 핸드폰이 갑자기 정지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완전 패닉에 빠졌다.
갑자기 개인정보 동의니 뭐니 하는것을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이 사용정지가 된것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문명의 이기와 해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감사함을 느끼다가 한 순간에 모든 특권이 박탈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눈 뜬 장님. 손이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차근히 예전에 온 메세지 중에서 해결이 될 만한 것들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해결!
야 이게 뭐야….. 초 특급 당황.
요즘 핸드폰 카톡도 잘 안울리고 이상하더니. 급기야 이런 일이. 수성역행이 맞긴 맞나보다.
덧붙여 오늘은 늦었던 입금도 들어왔다. 이것 역시 수성 역행으로 늦어졌지만, 다행히도 해결되었다!

이제 내일 드디어 인도에 떨어진다.
예전에도 한 번 혼자서 간 적이 있었는데도 왜이리 이번은 떨리고 걱정이 될까.
아무래도 예전에 갔을 때 보다 밑조사를 덜 해서 그런것 같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니까.
이번에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 걱정말자.

우선은 하나씩 하나씩.
델리에서 자이뿌르로 이동하는 이동선 결정하고, 자이뿌르는 20일 까지 체류하는것으로 정했으니, 자연스럽게 20일에 아지메르로 가야겠지.
아지메르에서 푸시카르로 이동하는 선이… 좀 빡센데, 어쩔까. 아니면 자이뿌르에서 버스로 푸시카르…? 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일단 물어는 보자.
그리고 푸시카르에서 바로 델리. 혹은 다시 아지메르-델리. 예전에는 밤기차를 탔었지. 3a를 타면 그나마 나았는데, 그마저 다른 사람이 타고 난 뒤의 이불같은 느낌이었다.
에전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갈등할 일도 적었는데… 체력과 재력이 반비례한다. 하하하.
재력이 없을때는 체력이나마 있었고, 지금은 체력이 없고 그나마 경재력이 —- 예전보다는 나은 정도일까.
입이 하나면 확실히 들어가는 돈도 적을 거고.

그나저나, 머리가 아픈것이 신경쓰인다. 어제 아침부터 살짝 아팠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무거운 짐을 지어서 목이 긴장되서 머리가 아픈느낌이다.
살살 스트레칭 해 주고 자야지.
저녁으로 돼지국밥 먹은건 잘한것 같다. 대충 편의점에서 때우는 식으로 먹지 말자. 이제 몸상한다.
술도 안마셔도 되고. 담배도 끊었다. 그러니 약간 심심하다. 이 심심한 시간을 글쓰기나 책읽기, 영상 편집 연습하고 공부하는 시간으로 써야겠다. 매일 아침 짧은 일기 쓰기가 그립다. 노트를 두고왔는데 잘한 일인가 싶다. 대신 이렇게 아이패드로 글을 남겨야지.
무겁게 이고지고 온 보람이 나마 있어야되지 않겠어어?

체력이 금방금방 소진된다.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행동하자, 집중하고 일 할수 있는 시간이 짧다. 옛날처럼 없는 기운에도 8,9시간 일을 할 수 있었던건, 역시 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조금더 현명하게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한다.
가장 고심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들은 오전과 초반에 가장 집중력이 좋을 시간에 몰아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천천히 느긋하게 진행해도 되는 일을 하자. 무엇보다 스스로를 몰아 가지 말자.
자이뿌르의 숙소가 무엇보다 기대된다.
편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식사도 가능한게 무엇보다 기쁘다.
따로 먹으러 나가는 것 조차 나는 힘이 드니까, 숙소에 식당이 있으면 정말 편리하고 고맙다.
아침 맑은 정신에 그날 해야 하는 일들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오전 시간 일하고, 오후 6시면 일을 마치자.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식사하고 씻고 쉬자.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자이뿌르는 온전히 원석과 나만의 시간.
괜스리 이곳저곳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 스트레칭 하고 목 풀고 자야지. 푹 자길 바래. 굿나잇. 태연. 굿럭.